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동료나 상사와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죠. "그냥 업무상 지시인데 뭐가 문제야?"라는 말과 "이건 명백한 괴롭힘이야!"라는 주장 사이에서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최근 한 지인이 상사의 반복적인 인격 모독적 발언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상담을 요청해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법적으로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려니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답변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경험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직장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다행히도 근로기준법에서는 직장내괴롭힘의 판단기준 4가지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을 알고 있다면 본인이나 동료가 겪고 있는 상황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직장내괴롭힘'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4가지 판단기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실제 사례를 통해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직장내괴롭힘이란?
직장내괴롭힘은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 명확히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직장내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 정의는 단순한 업무 지시나 평가와 괴롭힘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업무 실수에 대한 적절한 지적은 괴롭힘이 아니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공개적으로 인격을 모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직장내괴롭힘 방지법은 2019년 7월부터 시행되었으며, 이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법 시행 전에는 '회사 문화' 또는 '상사의 스타일'로 치부되던 많은 행위들이 이제는 법적으로 금지된 괴롭힘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직장내괴롭힘 판단기준 4가지
직장내괴롭힘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음 4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법적인 직장내괴롭힘으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1) 주체: 사용자 또는 근로자
직장내괴롭힘의 첫 번째 판단기준은 행위의 주체입니다. 직장내괴롭힘의 가해자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여야 합니다.
여기서 '사용자'는 사업주나 사업경영 담당자를 의미하며, 그들의 가족까지도 포함됩니다. '근로자'는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점은 사용자는 직장내괴롭힘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행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직장내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 근로자가 집단으로 한 명의 상사를 괴롭히는 경우에는 '집단 따돌림'으로서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같은 회사 소속이 아닌 외부인(예: 고객, 거래처 직원)에 의한 괴롭힘은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에는 다른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2) 지위의 활용: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등에서의 우위
두 번째 판단기준은 지위나 관계의 우위성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직장 내에서 우위에 있는 지위나 관계를 이용해야 직장내괴롭힘으로 인정됩니다.
우위성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인정될 수 있습니다:
- 직급이나 직책상 우위: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
- 인사권한 보유: 인사평가, 승진, 전보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
- 업무상 지휘·감독 관계: 프로젝트 리더와 팀원 관계
- 근속기간의 차이: 같은 직급이라도 1년 이상의 근속 차이가 있는 경우
- 연령이나 학연 등 사회적 관계: 선배와 후배 관계, 같은 학교 출신 등
예를 들어, 같은 직급의 동료 사이에서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회사에 더 오래 근무했거나, 나이가 많거나, 학교 선배인 경우 관계상의 우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3) 업무일탈: 업무의 적정범위 이상의 행위
세 번째 판단기준은 업무의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행위인지 여부입니다. 이는 직장내괴롭힘을 판단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이자,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업무의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는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폭행 및 협박 행위: 신체에 직접 폭력을 가하거나 위협하는 행위
- 언어적 행위: 폭언, 욕설, 험담 등 인격을 모독하는 언어 사용
- 사적 용무 지시: 업무와 무관한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행위
- 집단 따돌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행위
- 업무와 무관한 일 지시: 업무 역량과 무관한 일을 반복적으로 지시하는 행위
- 과도한 업무 부여: 물리적으로 수행 불가능한 과도한 업무를 지시하는 행위
- 업무수행 방해: 필요한 정보나 도구를 제공하지 않는 등 업무 수행을 방해하는 행위
업무의 적정범위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 관련성'입니다. 예를 들어, 업무 시간 외에 사적으로 연락하거나, 출신 지역이나 학교, 성별 등을 이유로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업무 관련성이 없으므로 적정범위를 넘어선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4) 인적, 환경적 침해행위: 신체적, 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환경 악화
마지막 판단기준은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해당 행위가 피해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켜야 합니다.
중요한 점은 가해자의 의도가 없더라도, 객관적으로 피해자가 고통을 느꼈거나 근무환경이 악화되었다면 이 요건이 충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 피해자가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경우
- 피해자의 업무 성과나 집중력이 저하된 경우
- 피해자가 회사에 출근하기 두려워하는 경우
- 피해자가 적절한 업무 수행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한 경우
실무적으로는 이 요건은 직장내괴롭힘 판단에서 크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의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면 자연스럽게 피해자에게 부정적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직장내괴롭힘 유형별 사례
직장내괴롭힘의 판단기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실제 사례를 통해 각 유형별로 어떤 행위가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폭행 및 협박 행위
사례: A 부장은 업무 실수를 한 B 사원에게 화가 나서 회의 중 책자를 던지고 "다음에 또 이런 실수를 하면 너는 이 회사에서 살아남지 못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판단: 이는 명백한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합니다. 상급자인 A 부장(주체)이 직위의 우위를 이용하여(지위 활용) 물리적 폭력과 협박이라는 업무 범위를 벗어난 행위(업무일탈)를 했고, 이로 인해 B 사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기 때문입니다(침해행위).
2. 언어적 행위
사례: C 팀장은 매일 아침 회의에서 D 대리를 지목하여 "너는 왜 이렇게 일을 못하냐", "지방대 출신이라 그런가?"와 같은 발언을 반복적으로 했습니다.
판단: 이 역시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합니다. 팀장(주체)이 직위의 우위를 이용하여(지위 활용)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업무일탈)을 했고, 이로 인해 D 대리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기 때문입니다(침해행위).
3. 사적 용무 지시
사례: E 이사는 F 과장에게 자신의 자녀 학원 데려다주기, 개인 쇼핑, 집안일 돕기 등을 반복적으로 지시했습니다.
판단: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합니다. 상급자(주체)가 직위의 우위를 이용하여(지위 활용)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일을 지시했고(업무일탈), 이로 인해 F 과장의 근무환경이 악화되었기 때문입니다(침해행위).
4. 집단 따돌림
사례: G 씨가 회사에 입사한 후, 같은 팀 동료들은 G 씨를 팀 단체 채팅방에 초대하지 않고, 점심 식사나 회식에도 의도적으로 부르지 않았으며, 업무 관련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판단: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합니다. 비록 개별 동료는 G 씨에 비해 우위에 있지 않을 수 있지만, 집단으로 행동함으로써 관계적 우위를 형성했고(지위 활용), 의도적인 배제와 정보 차단은 업무 범위를 벗어난 행위이며(업무일탈), G 씨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기 때문입니다(침해행위).
직장내괴롭힘 판단 시 법원의 기준
실제 법원에서 직장내괴롭힘을 판단할 때는 더 세부적인 기준을 적용합니다. 법원의 판단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
- 행위의 동기와 의도
- 시기와 장소 및 상황
- 피해자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반응의 내용
- 행위의 내용과 정도
- 행위의 반복성이나 지속성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해당 행위가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하는지 판단합니다. 단순히 정리하면, 사용자가 지위를 이용하여(권력관계), 업무와 관련하여(업무관련성),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행동(괴롭힘, 언동 등)을 함으로써, 인권 및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고용환경을 악화시키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몇 년 전 한 회사에서 근무할 때 상사가 매일 아침 회의에서 특정 직원의 실수를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비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엄격한 관리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명백한 직장내괴롭힘이었습니다. 해당 직원은 결국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퇴사했고, 회사는 좋은 인재를 잃었습니다. 이처럼 직장내괴롭힘은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에도 큰 손실을 가져옵니다.
직장내괴롭힘 대응 방법
직장내괴롭힘을 당했다고 판단되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 증거 수집: 괴롭힘 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합니다. 이메일, 문자메시지, 녹음, 목격자 증언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 사내 신고: 회사의 직장내괴롭힘 신고 절차에 따라 신고합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회사는 직장내괴롭힘 신고를 받으면 즉시 조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 노동청 신고: 회사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사내 신고가 어려운 경우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수 있습니다.
- 법적 대응: 직장내괴롭힘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나 형사 고소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회사는 직장내괴롭힘 신고를 받으면 다음과 같은 의무가 있습니다:
- 조사 의무: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 피해자 보호 조치: 조사 기간 동안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 징계 등 조치: 직장내괴롭힘이 확인된 경우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 비밀 유지 의무: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
직장내괴롭힘 증거 수집 방법
직장내괴롭힘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합니다. 다음은 효과적인 증거 수집 방법입니다:
- 녹음: 한국은 대화 당사자 중 한 명이 동의하면(본인이 녹음하는 경우) 합법적으로 대화를 녹음할 수 있습니다. 괴롭힘 상황이 예상될 때 녹음해두면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 문자메시지/이메일: 업무 시간 외 부적절한 연락, 모욕적인 내용의 메시지 등은 보관해두세요.
- 목격자 진술: 괴롭힘을 목격한 동료의 진술도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노동청에서는 목격자 진술만으로는 직장내괴롭힘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른 증거와 함께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 일지 작성: 괴롭힘 행위가 있을 때마다 날짜, 시간, 장소, 상황, 내용, 목격자 등을 상세히 기록해두세요.
- 의료 기록: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건강 문제가 있다면 의사의 진단서나 상담 기록도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직장내괴롭힘을 판단할 때 객관적인 증거만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가해자와의 녹취록", "가해자와의 문자 등 SNS 대화 및 이메일 내용"과 같은 직접적인 증거가 가장 강력합니다. 동료의 증언은 보조적인 증거로 활용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는 증거력이 약할 수 있습니다.
결론
직장내괴롭힘은 단순한 불편함이나 스트레스를 넘어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입니다. 이를 판단하기 위한 4가지 기준(주체, 지위의 활용, 업무일탈, 침해행위)을 모두 충족해야 직장내괴롭힘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직장내괴롭힘은 피해자 개인의 건강과 삶의 질을 해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과 조직 문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직장내괴롭힘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예방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약 직장내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증거를 수집하고 적절한 절차를 통해 대응하세요. 회사와 사회는 점점 더 직장내괴롭힘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법적 보호 장치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건강한 직장 문화를 만드는 것은 모두의 책임입니다. 직장내괴롭힘의 판단기준을 정확히 알고,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